
제주도의 바다는 언제나 푸르다. 그러나 그 푸른 빛 아래에는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수백 년 동안 그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섬의 삶을 지탱해왔다. 그 이름이 바로 **해녀(海女)**다. 해녀는 단순히 바다에서 일하는 잠수부가 아니다. 해녀는 제주 여성의 상징이자, 공동체의 중심이며, 자연과 인간이 맺은 가장 오래된 계약의 주체다. 물질(잠수 채취)을 통해 얻는 것은 단순한 해산물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 공동체의 지혜, 그리고 세대를 이어온 생명의 이야기다.
유네스코는 제주 해녀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그들의 지식과 전통,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로 인정했다. 오늘날 해녀의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제주 바다의 심장처럼 뛰고 있다. 해녀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공존의 의미’를 가르치는 살아 있는 문화다.
① 바다를 삶으로 삼은 여성들의 역사
해녀의 역사는 기록보다 오래되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여성들이 얕은 바다에서 소라, 전복, 해조류를 채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해녀가 제주 여성 경제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남성들이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 동안, 여성들은 근해에서 직접 생계를 꾸렸다. 그들의 일은 위험했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해녀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었다.
해녀들은 맨몸으로 물속에 뛰어들어 1분, 길게는 2분 이상 숨을 참으며 해산물을 채집했다. 그들이 내뱉는 ‘숨비소리’는 단순한 호흡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였다. 그 소리는 “나는 살아 있다”라는 선언이자, 바다와 인간의 대화였다. 어린 소녀들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물질을 배우고, 세대를 거듭하며 지식과 기술을 전승했다. 해녀의 세계에는 학교도, 교재도 없었다. 오직 바다와 경험, 그리고 서로의 믿음이 스승이었다.
② 공동체로 살아간 해녀들의 연대
해녀 문화의 핵심은 ‘함께 사는 삶’이다. 해녀들은 ‘잠녀회’ 또는 ‘해녀회’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그들은 조업 구역을 나누고, 바다의 자원을 지키기 위해 금어기를 정했다. 무분별한 채취는 공동체의 규칙에 따라 금지되었고, 이를 어길 경우 공동체에서 제재를 받았다. 이러한 질서는 법보다 강력한 신뢰로 유지되었다.
해녀회는 단순한 직업조합이 아니었다. 병이 나면 서로 돌보고, 사고가 나면 함께 슬퍼했다. 죽음을 맞이한 동료를 위해 마을 전체가 모여 제사를 지내고, 남겨진 가족을 도왔다. 해녀의 삶에는 경쟁보다 협동이 중심에 있었다. 바다는 모두의 것이고, 생명은 나눌수록 지켜진다는 믿음이 그들의 정신을 지탱했다.
그들은 또한 여성 연대의 상징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도 해녀들은 스스로 경제적 주체로 서 있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자녀를 공부시키고, 마을 살림을 꾸렸다. 해녀의 노동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자존심이자 존엄의 표현이었다
③ 신앙과 전통 속의 해녀 정신
해녀는 단지 노동자가 아니라, 자연과 신을 매개하는 존재였다. 그들의 삶 속에는 깊은 신앙과 의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다에 나가기 전, 해녀들은 ‘용왕당’에 들러 제를 지냈다. 바다의 신에게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생명을 허락해준 자연에 감사했다. 이 제의는 두려움의 표출이 아니라 경외의 표현이었다.
제주는 바람 많고 거친 섬이다. 그러나 해녀들은 그 거친 환경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삶의 질서를 찾았다. 물질 전에는 반드시 ‘숨비소리’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물속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위험을 공유했다. 해녀에게 신앙은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삶의 윤리였다. 그들은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았고, 대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환경철학이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생태관과도 통한다. 해녀의 전통 속에는 이미 환경보호, 자원관리, 생명존중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었다.
④ 사라져가는 전통, 이어져야 할 정신
현재 제주도에 남아 있는 해녀는 약 3,000명 남짓이다. 대부분이 60세 이상이며, 젊은 세대의 유입은 거의 없다. 관광업과 도시 생활의 확산, 해양자원의 감소 등으로 해녀의 수는 매년 줄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적 가치는 여전히 크다.
제주도는 이를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녀박물관에서는 해녀의 역사와 도구,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해녀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해 젊은 세대에게 물질 기술과 해녀 정신을 교육한다. 또한 해녀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에게 그들의 삶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체험이나 관람으로는 해녀 문화를 지킬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의 계승이다. 해녀들이 보여준 용기, 절제, 협동,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다. 우리는 기술 중심의 삶 속에서 종종 인간성을 잃어가지만, 해녀의 호흡 속에는 인간이 본래 지녀야 할 겸손과 존중이 담겨 있다.
결론
제주 해녀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존재이자, 인간이 자연과 맺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관계의 증거다. 그들의 숨소리에는 노동의 고통과 생명의 기쁨이 함께 깃들어 있다. 해녀는 단순히 전통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이자 예술이며, 생태적 인간상이기도 하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해녀의 역사는 곧 제주도의 역사이며, 더 넓게는 인간 문명의 한 단면이다.
우리가 해녀 문화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속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답이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해녀의 느린 숨결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과 함께 숨 쉬고 있느냐?”
바다는 오늘도 해녀의 숨소리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