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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문화

“왜 제주 사람들은 이 빙떡을 보면 울컥할까요?”

by 1시간전발행 이기자 2025. 11. 20.

“왜 제주 사람들은 이 빙떡을 보면 울컥할까요?”

“빙떡을 다시 꺼내야 하는 이유 — 기억은 잊어도, 맛은 잊지 않는다”

제주에서 태어나 40~50년을 살아온 이들에게 빙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집집마다 부엌의 온도, 메밀 반죽을 저으며 흘러내리던 어머니의 손목의 굳은살, 마당에서 뛰놀다 무즙 향에 이끌려 들어오던 아이들의 발소리까지… 모두가 이 얇디얇은 메밀전 한 장에 스며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가난했던 시절조차 빙떡 하나로 푸근해지던 경험이 있었다. 잔칫날이면 어김없이 부쳐지던 빙떡은 제주 사람들에게 '맛'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가족의 온기였고, 마을의 정이었고, 한 세대의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제주의 변화 속에서 이 소박한 음식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다. 빙떡의 향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음식의 소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일부가 잊혀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빙떡을 다시 한 번 꺼내어 보아야 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지켜야 할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라지는 빙떡, 사라지는 기억들

지금의 제주에서는 빙떡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얇게 펼쳐지던 메밀전의 향은 점점 귀해지고, 무채의 단물과 함께 올라오던 미묘한 감칠맛도 더는 쉽게 만날 수 없다. 관광지에서 판매되는 빙떡은 외형만 비슷할 뿐, 어린 시절 먹던 ‘그 맛’과는 거리가 멀다. 달고 자극적인 맛이 더해지면서 빙떡이 가진 고유한 담백함은 희미해지고 있다. 음식이 변했다기보다, 그 음식을 지키던 삶의 방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빙떡의 변화는 제주 사람에게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 ‘세대의 기억이 점점 덜어지는 감각’으로 느껴진다.


음식은 사라져도, 맛의 기억은 남는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음식의 ‘맛’은 종종 기억보다 더 오래 남는다. 빙떡이라는 단어 하나만 떠올려도, 많은 이들이 즉시 메밀전의 고소함과 무의 아삭거림을 떠올린다. 그 맛은 단순한 미각 정보가 아니라, 당시에 함께 존재했던 풍경과 감정, 사람들을 한꺼번에 불러온다. 그래서 빙떡은 ‘추억을 되살리는 열쇠’ 같은 존재다. 사라진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잊힐수록 더 진한 이미지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기억 속의 맛만 남기고 실제의 맛이 사라진다면, 그 차이는 세월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기억 속의 맛이 현실에서도 유지되도록 지켜주는 일이다.


빙떡을 다시 꺼내는 것은 제주를 다시 기억하는 일이다

지금 제주가 빠르게 변하면서 옛 음식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빙떡뿐만 아니라 오메기떡, 자리젓, 돗그리죽 같은 음식도 점점 ‘특별한 날에나 먹는 음식’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떡이 특별한 이유는, 이 음식이 제주 사람의 생활 깊숙이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적은 양의 양념, 그럼에도 놀랍도록 깊었던 맛. 이런 단순한 식문화야말로 제주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 빙떡을 다시 꺼내는 일은 결국 **‘제주다운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지나왔고, 무엇을 먹으며 살아왔는지, 어떤 환경에서 가족을 꾸리고 이웃과 웃음을 나누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잊지 않는 것

모든 전통은 누군가가 기억할 때 유지되고, 누군가가 실천할 때 이어진다. 빙떡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복원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단지 한 번쯤 집에서 만들어보거나, 전통 방식 그대로 파는 가게를 찾아보거나, 어머니나 이웃에게 옛날 방식이 어땠는지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너무 멀어지지 않게 붙잡아두는 것이다. 음식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때 살아남고, 사람의 손이 닿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제주가 제주답기 위해, 우리는 제주 사람의 일상에서 탄생한 이 소박한 음식을 조금만 더 자주 떠올려주면 된다.


결론 — 빙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제주 자체이다

빙떡은 메밀전 한 장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한 세대의 시간과 감정, 자연과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작업이 아니다. 그저 한 번 더 기억하고, 한 번 더 꺼내어 보고, 한 번 더 나누는 것에서 시작된다.
제주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지금, 빙떡을 다시 떠올리는 일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잊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이기도 하다.
빵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과자처럼 달지도 않지만…
빙떡만큼 제주를 온전히 설명하는 음식은 또 없다.

이제는 우리 세대가 그 의미를 다시 붙잡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