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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문화

미신이라고요? 오해하지 마세요. 이것은 제주 사람들의 500년 된 '심리 치료'입니다

by 1시간전발행 이기자 2025. 11. 21.

미신이라고요? 오해하지 마세요. 이것은 제주 사람들의 500년 된 '심리 치료'입니다

 

 1만 8천의 신이 사는 섬, 그들이 바람을 잠재우는 법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마을 어귀나 바닷가 절벽 위에서 형형색색의 깃발이 펄럭이고, 징과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광경을 목격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제주만의 독특한 무속 의례인 **'굿'**이 벌어지는 현장입니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은 이를 보고 "아직도 이런 미신을 믿나?" 하며 혀를 차거나, 무서운 귀신 놀음이라며 급히 자리를 피하곤 합니다.처음들어보면 굉장히 무섭고,낯설기도합니다.

 

하지만 '제주문화연구소'의 시선은 다릅니다. 척박한 화산섬, 언제 죽음이 덮칠지 모르는 거친 바다 앞에서 제주 사람들에게 무속 신앙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불안한 삶을 지탱해 주는 **'종교'**였고, 억울한 한을 풀어주는 **'심리 치료'**였으며, 마을의 결속을 다지는 **'축제'**였습니다. 제주에는 무려 1만 8천이나 되는 신들이 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집안의 부엌, 화장실, 대문, 심지어 밭의 돌멩이 하나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는 이 놀라운 **'범신론(Pantheism)'**의 세계. 오늘 우리는 무당이 아닌 **'심방'**이라 불리는 제주의 사제들을 통해, 이 섬의 가장 깊은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1. 무당이 아니라 '심방'입니다. 신과 인간을 잇는 사제

육지에서는 무속인을 보통 '무당'이라 부르며, 신내림을 받아 접신하는 존재로 여깁니다. 천대받는 경우도 많았죠. 하지만 제주에서는 그들을 **'심방'**이라 높여 부릅니다. 심방은 단순히 귀신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의 통역사이자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사제(Priest)'**였습니다.

 

특히 제주의 큰 굿을 주관하는 '큰 심방'들은 신 내림이 아니라, 집안 대대로 무업을 계승하며 복잡한 제의 절차와 신화(본풀이)를 학습하여 자격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며칠 밤낮으로 이어지는 굿판에서 수만 줄에 달하는 서사무가(신들의 이야기)를 암송합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 '호메로스'에 비견될 만큼 엄청난 구비문학적 역량을 가진 **'지식인'**이자 **'예술가'**들입니다. 그들을 그저 미신을 조장하는 사기꾼으로 치부하는 것은, 제주의 거대한 구비문학 도서관을 불태우는 것과 같은 무지한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2. '본풀이', 신들의 이력서를 읊으며 상처를 치유하다

제주 굿의 핵심은 **'본풀이'**에 있습니다. 본풀이란 '신의 근본을 푼다', 즉 신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고난을 겪고 신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과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주의 신들이 하나같이 **'상처받은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 억울하게 죽은 자, 사랑에 실패한 자... 심방은 굿판에서 이 신들의 기구한 사연을 구구절절 읊어댑니다. 굿을 보러 온 마을 사람들은 신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고, 신들도 저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며 위로를 받습니다. 이것은 현대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집단 상담'**이나 **'드라마 치료(Drama Therapy)'**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제주의 굿판은 신을 달래는 자리이자, 동시에 고단한 삶을 사는 제주 사람들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지는 거대한 '힐링 캠프'였던 것입니다.

3. 영등할망이 오시는 날, 바람의 축제가 열린다

음력 2월이 되면 제주는 '영등철'이라 하여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을 맞이하느라 분주해집니다. 영등할망은 바람을 몰고 제주에 와서 바다에는 전복과 소라의 씨를 뿌리고, 밭에는 곡식의 씨를 뿌려준 뒤 떠난다고 믿어집니다. 이때 열리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건입동 사라봉 가는길에 칠머리당을 지날때 가끔들리는 소리는 참 신비로운 여운을 많이 남깁니다.

 

이 굿판에서는 해녀들이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심방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인간이 자연(바람)을 정복하려 하지 않고, 신으로 모시며 겸손하게 공존을 청하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진정한 **'생태주의 철학'**이 아닐까요? 영등굿은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신이 한데 어우러지는 우주적인 화해의 장입니다.

4. 사라져가는 신들의 목소리,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이유

그러나 현대화의 물결 속에 제주의 1만 8천 신들도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미신 타파 운동으로 수많은 신당(Sindu)이 훼손되었고,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심방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굿판의 징 소리가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볼거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주 사람들이 수백 년간 지켜온 정신적 지주와 공동체의 결속력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제주의 어느 당(Dang) 앞에는 누군가가 몰래 놓고 간 사탕이나 귤이 놓여있곤 합니다. 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기댈 곳이 필요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그 마음을 비웃을 자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투박한 돌무더기 앞에서 숙연해져야 합니다. 그곳에는 데이터나 알고리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바람이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 낯선 징 소리가 들리면 발길을 멈춰보세요"

다음번 제주 여행에서 우연히 징 소리를 듣게 된다면, 도망치지 말고 잠시 발길을 멈춰 그 현장을 지켜보세요. 하얀 소복을 입은 심방의 땀방울과,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비는 할머니의 주름진 뒷모습을. 그 순간 여러분은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귀신 놀음이 아니라, 척박한 삶을 견뎌내기 위해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웃던 제주 사람들의 가장 뜨겁고도 인간적인 **'생존의 몸짓'**이라는 것을요.